정치적인 문제를 바라볼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안의 내용조차 살펴보기 전에 진영과 감정에 따라 결론부터 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하나의 사안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고, 들어보며 함께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양쪽의 이야기를 소개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중간 어디쯤에 정답이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실관계와 각자의 주장, 그 근거를 충분히 살펴본 뒤 무엇이 더 타당한지는 여러분 각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갈등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번 갈등은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에서 시작됐습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김민기·박순영·윤성식·손봉기 등 4명을 후보자로 추천했지만, 청와대와 사법부가 최종 후보를 놓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후임 제청이 계속 미뤄졌습니다.
그러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8월 18일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습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8월 28일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실질적인 협의 없이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 이뤄져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재제청 요구를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23일에도 제청 과정에 절차적 흠결이 있었다는 청와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습니다.
청와대 역시 대통령이 손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다는 뜻은 공문에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며 반박했습니다.
결국 한 명의 대법관을 누구로 임명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문제로 갈등이 확대된 것입니다.
대통령이 던진 질문, 왜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한가
이번 논란을 보면서 오히려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왜 헌법은 사법부를 독립시켰을까요?
그리고 왜 대법관 한 사람을 임명하면서 대법원장, 국회, 대통령이라는 서로 다른 헌법기관을 거치도록 만들었을까요?
헌법은 대법관을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으로 지명해 임명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세 기관 중 어느 한 곳도 혼자서는 대법관 한 사람을 임명할 수 없다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후보자를 제청할 수 있지만 혼자 임명할 수 없습니다.
국회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다른 사람을 대법관으로 제청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역시 임명권을 가지고 있지만 대법원장을 대신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견제와 균형의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견제란 상대방의 권한을 빼앗아 내가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권한을 가진 기관들이 어느 한쪽의 의사만으로 결론을 강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로의 의견이 끝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헌법에 해법이 빠져 있다고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도록 만들어진 구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A라는 후보자를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 대통령에게 다음 후보자를 결정할 권한까지 넘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법원장이 다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 추천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새로운 후보추천 절차가 필요한지를 다시 검토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합의가 없다면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공전할 위험도 있습니다.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어느 한 기관도 자신의 의사만으로 대법관 인선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번 문제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서 특정 후보의 임명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남아 있는 후보 중 한 사람을 다시 제청하라”거나 특정 인물의 제청까지 요구하고 이를 관철할 권한이 있다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경우 형식적으로 제청권은 대법원장에게 남아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다음 후보자의 범위를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 문제를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권한이 있는지와, 다음에 누구를 제청할 것인지까지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후자까지 대통령의 임명권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실질적으로 어디까지 보장되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면 대통령에게 부여된 임명권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도 생깁니다.
실제로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에 대통령이 무조건 기속된다면 대통령의 임명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어느 한 권한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해서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제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권력분립의 가치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각 기관에 나눠준 권한의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적 구조가 유지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대법원장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원칙에서 보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힌 입장은 충분히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제기한 헌법적 문제에 대해 정치적 호불호만으로 쉽게 단정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조 대법원장의 모든 판단이 비판이나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번 대법관 인선 과정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통상적으로는 대통령 측과 사법부가 협의를 거친 뒤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자를 제청해왔지만, 이번에는 최종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 대법원장이 손 후보자를 제청했습니다.
이후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와 대법원장의 거부가 이어졌고, 그 결과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자리는 6개월 넘게 공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 대법원장 역시 장기간의 대법관 공백으로 국민에게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송구하다며 절차가 신속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것과 다른 헌법기관과 대화하고 조정하는 것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재판 공백을 최소화하고 법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상 제청권을 지키면서도 대통령 및 국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새로운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사법부 독립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가 다른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도 아니고, 행정부가 사법부의 인사를 결정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각자가 헌법으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되 어느 한쪽도 혼자의 힘으로 결론을 강제하지 못하고, 결국 서로를 존중하면서 합의 가능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
그 불편하고 때로는 답답한 과정 자체가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말하는 대통령 임명권의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장하는 제청권과 사법부 독립의 의미 역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주장만 먼저 선택해 놓고 그 주장에 맞는 사실을 찾기보다는, 양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 뒤에 판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판단은 결국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